Skip to content

자유게시판

부산 울산 경남 창원 김해 신축아파트 분양 정보
제목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다2026-03-19 14:46
작성자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다



발심(發心)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준말로, 불가에서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보통 깨달음(보리)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며, 일반적으로는 불문(佛門)에 들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자경문(自警文)은 수행자가 스스로를 경책하는 좌우명·경계의 글로서 내용은 수행자가 부드러운 옷·좋은 음식 수용을 피하고, 재물에 인색하지 말며, 남의 물건을 구하지 말고, 좋은 벗만 가까이 하고 나쁜 벗과는 어울리지 말라는 등 생활·행동의 경계를 담고 있습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은 신라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 고려시대 지눌스님의 계초심학인문, 야운스님 자경문을 합본한 입문서로, 출가한 승려를 위하여 필요한 전통의 승가교육기관인 강원(講院)에서 사미승(沙彌僧, 정식의 승려가 되기 위한 250개 구족계具足戒를 받기 위하여 수행하고 있는 어린 승려)들 가장 먼저 배우는 책 입니다.

내용을 보면, 지눌의계초심학인문을 필두로 하여 분황원효의 발심수행장 그리고 야운각우의자경문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계초심학인문은 지눌이 48세가 되던 해(1205년)에 쓴 글로서 불문에 들어온 초심자의 일상 규범과 승당 생활에서 명심할 것과 공부하는 마음가짐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 놓고 있으며, 원효의발심수행장은 입산수도의 이익 및 그 필요성을 간명하게 논술하고, 또 수행방법과 그 결심을 초심자에 알맞도록 요긴하게 서술한 것이며, 야운의 자경문도 매우 짧은 글이지만 앞의 두 글에 비해서는 오히려 긴 편이어서 앞의 두 편을 합친 만큼의 분량에 상당하며 글 서두에 언급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초발심자경문은 한국 불교사를 대표하는 저명한 고승들의 수행론을 한 책으로 엮어 출가 승려들의 필수 입문교재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불교사적 의의가 크며, 이 저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원(승가대학)에서 필수 교과목으로 애독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저술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이르는 말이 있습니다. <자경문(自警文)>의 한 구절로,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 년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니라.>는 뜻입니다.
마음 수양은 며칠만 해도 도움이 되지만, 재물 탐욕은 백년 모아도 먼지만 남습니다. 착한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세상에 적이 없으니 편안하며, 재물을 쌓다보면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으며 내 욕심을 채우다 보면 내마음도 아프게됩니다. 마음 편안함은 오래가지만 모은 재물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오로지 마음이며,마음 수양을 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마음부자가 진정한 부자라고 선현들 가르침을 기억하며, 하루 아침에 이루려 하지말고 천천히 마음 가꿔보면 어떨까요?


예전에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의 글에 이 <삼일수심 천재보>라는 글이 있어, 이를 함께 인용해 마음공부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영덕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15살이었습니다. 하루는 마을 근처에 있는 절에 놀러 갔습니다. 거기서 동자승을 만났습니다. 동자승은 그에게 명구(名句) 하나를 읊었습니다. 삼일수심은 천재보요, 백년탐물은 일조진이다.
소년은 상당히 조숙했었나 봅니다. 그는 이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큰 감동도 받았으며, 자신이 갈 길이 바로 이 길임을 직감했습니다. 소년은 그 길로 몰래 집을 나와 출가를 하는데, 15살 소년의 자발적 출가였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냐고요? 불교계에서 유불선을 통달하고 방대한 화엄경을 번역하신 월정사 조실 고 탄허스님의 강백(講伯)을 이어받은 이름이 높은 범어사 조실 무비(無比) 스님입니다. 15살 소년은 이제 82살의 노승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가톨릭에서 주관한 죽음 체험 피정을 취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줄지어 선 참석자들은 자기 차례가 되자, 관 속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잠시 후 관 뚜껑이 닫히고 그 속에서 5분 가량 있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관에서 나온 사람마다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그걸 쭉 지켜보던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저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 저들은 왜 눈물을 흘리는 걸까? 저는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줄을 섰지요. 제 차례가 왔고, 저도 관 속으로 들어가 누웠는데 곧이어 관 뚜껑이 닫혔습니다. 관 뚜껑과 관, 그 사이로 실처럼 가느다란 빛이 들어왔기에 아주 캄캄한 어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관 뚜껑 위로 천이 덮였습니다.

그러자 빛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어둠 속에 제가 누워있었습니다. 아~, 여기가 무덤이구나!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돼 있었고, 관 속과 관 바깥은 달라도 아주 달랐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관 바깥세상에 있는 어떠한 것도 이 안으로 가지고 올 수가 없구나.
관 바깥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요. 가족, 재물, 나의 친구, 내가 하는 일, 내가 늘 보고 읽는 책, 내가 아끼는 이런저런 물건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물건도, 관 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순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무엇이 남는 걸까? 관 속에 누워있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 물음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겠더군요. 아! 마음이구나. 죽어서 관 속에 누운 나에게 남는 것은 마음이고, 이 관 속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것도 마음 뿐이구나!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살아야지, 마음을 잘 가꾸며 살아야지.
사흘 닦은 마음이 천년의 보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구절에 무척 공감이 갔습니다. 왜냐구요? 죽은 뒤에 내가 가져가는 것은, 마음 뿐이라는 걸 절감했으니까요. 아무리 빛나는 보석과 좋은 자동차도, 좋은 집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오직 하나, 나의 마음만 가지고 갈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비 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불교는 마음 닦는 종교 즉, 깨달음의 종교라고 말하는데, 깨닫기 전과 깨달은 후는 무엇이 달라질까요? 무비 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달라지는 건 없다. 다만 인간의 삶에서 맛봐야 하는 굉장한 기쁨, 엄청난 절망, 잊지 못할 고통 앞에서는 그 차이가 확 달라진다. 도인일수록 무게 잡지 않는다. 정말 명경지수(明鏡止水)의 마음을 가진 도인은 더 인간적이다. 더 슬퍼하고, 더 기뻐하지만, 그 슬픔과 기쁨에 젖지 않을 뿐이고, 기뻐하되 기쁨에 물들지 않고, 절망하되 절망에 물들지 않는다.
물론 불의를 보면 분노한다. 그런데 그 분노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면 어찌 되겠나. 슬픔과 고통과 절망 속에 있어도 나[我]가 상(傷)하는 일이 없다.

그런 삶은 어떤 삶일까?를 다시 여쭈었습니다. 가뿐한 삶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살기가 아주 수월한 삶이 되며, 삶도 가뿐하고 죽음까지도 가뿐하게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생사 해탈이 대단한 것이 아니며, 그게 바로 생사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비 스님은 자신이 입적할 때 다비식(茶毘式)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탐욕과 욕심은 고통과 괴로움의 씨앗입니다. 어떻습니까? 탐욕에 젖어 만고(萬古)에 오명(汚名)을 날릴 것인가, 아니면 욕심을 버리고 공덕을 쌓아 영명(英名)을 세상에 떨치며, 최고의 인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고맙습니다
#국내주식#코스피#코스닥#해외주식#나스닥#주린이#저평가주#우량주
댓글
이전스피어 질문이요!2026-03-19
다음알뜰폰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까요?2026-03-19
부산 울산 경남 창원 김해 신축아파트 분양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