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우울했다.
사람의 삶과 관계를 오래 지켜보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는 더 그렇다.
누군가를 탓하거나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은 그 시간을 떠올리며 조용히 생각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얼마 전 가까운 사람의 남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늘 온순한 사람이었다. 자기 주장을 앞세우기보다는 대부분 상대의 뜻에 맞추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우울증 때문이었을까. 극단적인 선택의 이면에는 어떤 시간들이 쌓여 있었을까.
성찰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성찰이 지나쳤기 때문이었을까.
살다 보면 인심이 좋고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 분명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중에는 생각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근거를 이야기해도 다시 자기 생각으로 돌아가 버린다.
자기 성찰이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다른 의견을 듣고 필요하다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때로는 자존감이 약할수록 나만 옳다는 생각에 더 단단히 매달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도 여기에서 갈린다.
지식은 많이 아는 것이다. 지혜는 상황에 맞게 나를 바꿀 수 있는 힘이다.
고인도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시간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보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없다. 그래서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집과 아집이 강해지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잘못은 보이지 않고 남의 잘못만 더 크게 보인다. 그러다 보면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은 종종 자기가 싫어하던 모습과 닮아가기도 한다. 스스로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채.
나르시즘과 독선이 사람 안에서 함께 자라면 그 가시는 점점 길어지고 날카로워진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찔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가시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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