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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던 민족, 유대인은 도대체 왜 그렇게 박해받았을까?2026-03-19 11:19
작성자
유대인의 시작

유대인, 수천 년을 박해받던 민족.
나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던 이들은
어떻게 이스라엘을 건국했을까요?
어떻게 엄청난 부를 쌓고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이 모든 이야기를
아주 오래된 역사부터 차근히 따라가 보겠습니다.

유대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히브리인들은
고대 중동 지역, 특히 가나안 지역에 살던 민족이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기근 때문에
일부가 이집트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오랜 시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집트의 지배와 강제 노동을 받게 되었고
모세는 유대인을 이끌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역사라기보다
유대인 정체성의 핵심 기억이 됩니다.

이후 그들은 다시 가나안 지역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 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현재 이란의 조상인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이 바빌론을 정복한 뒤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성전을 다시 세우도록 허락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인과 페르시아(이란)는
오랜 기간 동안 우호적인 관계로 지내던 민족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 유대인 반란이 일어난 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됩니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미움받은 이유

다양한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은
오랜 시간 미움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유대인은 엄격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율법의 형식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는 율법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형식주의와 위선을 비판하며
율법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이것이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지역에서는
메시아가 로마를 몰아내고 유대 왕국을 회복하리라 기대했지만
정작 예수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서에는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합니다.
유월절 기간이 되면 로마 총독이 군중의 요구에 따라
죄수 한 명을 풀어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두 명의 죄수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예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바라바였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바라바는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폭동과 살인에 연루된 인물,
즉 로마에 저항하던 반란 세력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됩니다.

군중은 결국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처형하라고 요구합니다.

이 장면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는 단순한 해석이 퍼지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형을 집행할 권한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있었고
십자가형 역시 로마의 형벌이었습니다.

이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기독교와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로 나뉘게 됩니다.
중세 대부분의 유럽 사회는 기독교 사회였기 때문에
유대인은 박해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문화적인 차이였습니다.
유대인의 생활은 음식 규정, 안식일, 결혼 규정 등
수백 가지 율법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과 쉽게 섞이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느 나라에 살더라도
자신들만의 학교와 종교 공동체를 유지하며 살아갔습니다.
랍비가 율법을 해석하고 교육을 담당하며
전체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 사회 역시 유대인을 배척했고
유대인을 게토라는 격리된 공간에서 살아가게 했습니다.
밤이 되면 문이 닫히고 출입이 제한되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유대인들은
토지 소유, 길드 가입, 공직 진출 등에서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허용된 직업이
상업과 금융업이었습니다.

랍비 중심의 교육 전통 덕분에
유대인은 문맹률이 낮고
수학적 계산 능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인은 돈을 위해 영혼을 팔았다는 식의 편견이 생겼고
경제 위기나 전염병이 발생하면
유대인이 희생양이 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유럽에서의 박해와 홀로코스트

전염병, 경제 위기, 정치적 이용.
역사는 유대인을 반복해서 희생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럽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음모론이 퍼지며
독일,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등에서
수천 개의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됩니다.
특히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약 2,000명의 유대인이 화형당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국가 재정이 파탄 나자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은 중세 유럽 사회에서 빈번했습니다.
왕이나 권력이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유대인은 가장 쉬운 희생양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결국 20세기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사건이었습니다.

극단적인 나치 인종주의를 내세운 히틀러는
유대인을 독일 민족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유와 경제 위기의 원인을
유대인에게 돌렸습니다.

경제 파탄과 막대한 전쟁 배상금에 힘겨워하던 독일 국민에게
히틀러의 말은 정당해 보였습니다.
결국 나치 정권은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강제 수용소로 보내는 정책을 시행했고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 중 하나인
홀로코스트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 유대인들은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가 된 곳이 팔레스타인 지역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땅에는 이미 아랍계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을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
두 나라로 나누는 분할안을 제안합니다.
유대인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아랍 국가들은 거부합니다.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면서
첫 중동 전쟁이 시작됩니다.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이란과의 갈등도 심화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이란은 과거에는 이스라엘과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1979년 이전 이란 팔라비 왕조 시절에는
미국이스라엘이란이 협력 관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란 혁명은 국가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혁명 이후 이란은 시아파 이슬람 신정 국가가 되고,
시아파 혁명 지도자였던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미국을 큰 사탄(Great Satan),
이스라엘을 작은 사탄(Little Satan)이라고 부르며
강한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이후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등
반이스라엘 세력을 지원하면서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직접 대립하는 국가가 됩니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기술 강국이 되었을까?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도 약 900만 명 정도.
하지만 세계적인 기술 강국이 되었고,
국방·사이버·의료·AI 분야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경제력은 건국 후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 공동체의 자본과 지식이
한곳으로 모이면서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토지 소유와 길드 가입이 제한되면서
상업과 금융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오히려 그들을 국제 금융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뉴욕.
세계 주요 금융도시마다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이들은 서로 긴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로스차일드 가문은
18~19세기 유럽 국가의 금융을 사실상 움직였습니다.
이 자본력은 훗날 이스라엘 건국의 직접적인 기반이 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시온주의 운동은
팔레스타인 땅을 무력으로 차지한 것이 아니라
돈을 모아 구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유대인 재단, 기업가, 금융인들 사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기부와 투자가 시작됩니다.

팔레스타인 토지 매입
초기 정착촌 건설
농업 공동체(키부츠) 설립
학교·병원·종교시설 건립
과학 연구소, 군사 및 산업시설 구축

이 모든 것이 빠르게 마련됐습니다.

건국 후, 이스라엘 성장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유대인의 교육 문화
탈무드 전통은 질문, 토론, 논쟁을 지식의 핵심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는 높은 교육 수준과 토론 문화가 자리 잡았고
과학자, 창업가, 연구자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두 번째, 강력한 군사·기술 인프라
이스라엘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이버 정보부대 Unit 8200이 있습니다.
여기서 훈련받은 인재들은 제대 후 AI, 보안, 반도체, 의료 기술 등
최첨단 분야의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세 번째, 스타트업 국가 구조
이스라엘은 인구 대비 스타트업 수 세계 1위입니다.
벤처 투자, 국방 기술, 교육,
그리고 글로벌 유대인 네트워크가 결합하며
스타트업 국가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성장의 구조는
건국 이전부터 이미 형성되어 있던
유대인의 글로벌 자본과 지식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등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두뇌와 기술로 성장했지만
팔레스타인 문제, 종교 분쟁,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긴장,
그리고 오늘날 이란과의 대립까지
중동의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역사를 이해하면 뉴스가 더 선명해집니다.
오늘의 숨겨진 이야기,
이스라엘의 건국과 갈등의 긴 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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