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칸트. 이 네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도 "살아보니 그렇더라"를 진리로 선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용기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끌어와 답했습니다. 전쟁터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 용기라고,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무모함과 용기는 어떻게 다른가?" "법이 부당하다면 그것도 정의인가?" 그는 상대방이 확신하는 순간마다 그 확신의 근거를 하나씩 흔들어놓았습니다. 그가 말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판단 보류의 원칙이었습니다. 개인적 확신은 언제나 검증의 대상이었고, 대화를 통해 끝까지 캐묻지 않으면 그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그는 물고기를 직접 해부했고, 식물의 성장을 관찰했으며, 정치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본 백조는 모두 하얗더라"는 경험담이 아니라, "왜 백조는 하얀가" "어떤 조건에서 색이 결정되는가"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수백 가지 관찰 속에서 공통된 구조와 원인, 반복되는 질서를 뽑아내려 했습니다. 경험은 재료였고, 진리는 그 재료를 인과와 개념으로 엮어냈을 때 비로소 성립했습니다. "경험은 중요하다"는 말이 "경험담이면 충분하다"는 뜻이 아니었던 이유입니다.
스피노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렌즈를 깎으며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쓴 에티카는 기하학 증명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슬픔을 겪었다"가 아니라 "슬픔이란 무엇인가" "슬픔은 어떤 구조로 발생하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기분, 상처, 체험을 근거로 세상을 판단할 때 가장 자유롭지 못해진다고 보았습니다. 누군가 나를 배신했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악하다고 단정하고 세상 전체를 불신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보기에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감정의 노예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말은 "느끼지 말라"가 아니라 "이해하라"였습니다. 사물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연결을 이해하는 것, 그것만이 진리이자 자유의 조건이라고 보았습니다.
칸트에 이르면, 이 태도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했다고 합니다. 제한된 경험 속에서 살았지만, 그는 경험만으로는 절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태양이 어제도 떴고 오늘도 떴으니 내일도 뜰 것이다"는 경험에서 나온 기대일 뿐, 필연적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경험하든, 그 경험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그 경험을 묶어내는 이성의 형식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시간, 공간, 인과 같은 범주가 먼저 있어야 경험이 질서 있는 지식으로 조직될 수 있습니다. 경험은 시작점이지, 판결문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이 네 철학자는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한 가지에서는 정확히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경험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험을 그대로 진리로 올려놓는 순간, 사유는 멈춘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이렇게 살아봤다"가 아니라 "그 경험이 정말로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묻습니다. 느낌보다 기준을, 확신보다 검증을, 체험보다 구조를 먼저 세웠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이 들면 알게 된다"거나 "겪어봐야 안다"는 말로 경험을 지혜와 동일시합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이 보여준 것은 정반대입니다. 경험은 언제든 착각이 될 수 있고, 편견으로 굳어질 수 있으며, 나만의 세계에 갇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철학이란 경험을 많이 쌓는 일이 아니라, 경험을 섣불리 결론으로 만들지 않는 훈련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말은 인생 조언처럼 편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성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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