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글 모음(8)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이끼 낀 기와지붕 위로 열린 푸른 하늘도 한번쯤 쳐다봐라. 산마루에 걸린 구름, 숲 속에 서린 안개에 눈길을 줘보라.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맑게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가보라.
차고 부드러운 그 흐름을 통해 더덕더덕 끼여 있는 먼지와 번뇌와 망상도 함께 말끔히 씻겨질 것이다.
출처 : 법정 스님 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우주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움직이고 흐르면서 변화한다.
한곳에 정지된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이 그렇고 별자리도 늘 변한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이 지구도 우주 공간에서 늘 살아 움직이고 있다.
무상하다는 말은 허망하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변화의 과정 속에 생명이 깃들고, 변화의 과정을 통해
우주의 신비와 삶의 묘미가 전개된다.만일 변함이 없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것은 곧 숨이 멎은 죽음이다.
살아 있는 것은 끝없이 변하면서 거듭거듭 형성되어 간다.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그와 같이 순환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호흡이며 율동이다.그러므로 지나가는 세월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오는 세월을 잘 쓸 줄 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출처 : 법정 스님 글
작은 것에서 얻는 행복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큰것과 많은 것에는 살뜰한 정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다 보니 무너져서 작고 적은 것에
고마워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
내가 가끔 시내에 나오면 편지가 와 있다. 편지는 많이 받지만 답장을 자주 쓰지는 못한다.지난겨울 어느 날 밖에는 눈이 오고 뒷골에선 노루 울음소리 들려 내 마음도 소년처럼 약간 부풀어올랐다.
그래서 묵은 편지를 뒤적이다 답장을 몇군데 써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 벼루에 먹을 갈았다.
마땅한 종이가 없어 뒤적이다가 도배하고 남은 종이 사이에서 화선지 두 장을 발견했다. 그것도 전지가 아니고 쪼가리였다. 그걸 오려서 편지를 몇 통 썼는데, 종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아껴 써야 했다. 자연히 종이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때는 글씨도 크게 써서 끝내곤 했는데 그날은 아주 잔 글씨로 써서 몇 군데 띄어 보냈다. 그때 적은 것이 참 살뜰하고 고맙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갔다가 지물포에서 화선지를 스무장 남짓 사갖고 왔다. 그랬더니 쪼가리 두장 가졌을 때의 오븟하고 살뜰하고 고맙던 정이 사라지고 말았다. 많은 것은 그런 것이다.
출처 : 법정 스님 <작은 것에서 얻는 행복> 중에서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갖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삶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하고 자기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직위나 돈,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출처 : 법정 스님 글
올 봄에 흙방을 하나 만들었다. 지난해 가을 도자기를 빚는 이당거사의 호의로 흙벽돌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산골에 얼음이 풀리자 실어왔다. 4월 한 달을 꼬박 방 한 칸 만드는 일에 골몰했다. 산 아래 20리 밖에 사는 성실한 일꾼 두 사람과 함께 일을 했다.
이전까지 나뭇광으로 쓰던 자리에다 방을 들였는데, 이번에는 아궁이를 기존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잡았다. 새로 만든 방의 위치도 위치지만 어떤 바람에도 방 하나만은 군불을 지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 와 살면서 거센 바람 때문에 군불을 지피는 데 너무나 애를 먹어 왔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에 겪어 온 경험과 두뇌 회전이 빠른 일꾼의 솜씨로 이번에 만든 방은 불이 제대로 들인다. 나는 당초부터 애상한 바였지만, 처음 방구들을 놓아본다는 일꾼은 불이 제대로 들일지 내심 불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써 만들어 놓은 방에 불이 안 들이면 말짱 헛일이기 때문이다.
방이 완성되어 처음으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날 우리는 기대 반 불안 반이었다. 그러나 불길이 훨훨 소리를 내며 빨아들이는 걸 보고 함께 손뼉을 쳤다. 그때 일꾼은 장난말로 불이 잘 들이면 구들장 놓는 쯩을 하나 써달라고 했는데, 형식적인 종이쪽지보다도 나는 그의 솜씨를 믿을 수 있게 됐다. 방이 고루 따뜻해졌으니 성공한 것이다.
개울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불이 너무 잘 들여, 굴뚝으로 열기가 그대로 빠져나갈 염려가 있다. 그래서 굴뚝 위의 바닥 기왓장을 하나 엎어 놓았다. 방 안의 보온을 위해 필요한 장치다.
이 방은 시멘트를 전혀 쓰지 않고 구들장을 비롯해 모두돌과 찰흙으로만 되었다. 구들장 위에 흙을 한 자쯤 덮었기 때문에 군불을 지핀 지 네댓 시간이 지나야 방바닥이 뜨뜻해 온다. 이렇데 되면 사나흘 동안은 불을 더 지피지 않아도 방 안이 훈훈하다. 특히 이런 방은 추운 겨울철에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구들장 위에 흙을 두텁게 깔지 않으면, 군불을 지피자마자 이내 더워진다. 아랫목은 프라이팬처럼 뜨거워 발을 디딜 수 조차 없다. 아랫목 장판이 까맣게 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 안은 초저녁만 반짝 더워졌다가 새벽녘이면 식어 버린다. 한 때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이내 냉랭해지는 세상인심처럼. 우리 모두가 어렵게 살던 지난날 나그네 길에서 하룻밤 묵어가던 여인숙 방들이 대부분 그랬었다.
며칠 전 새로 만든 흙방에 도배를 했다. 찰흙으로만 다지고 발랐기 때문에 벽과 바닥 사이에 틈이 생겨 연기가 조금씩 새어나왔다. 초배를 하기 전에 질긴 닥종이를 오려 두세 겹씩 틈을 바른 후에 덧발랐더니 연기가 잡혔다. 연기와 물은 조그만 틈만 있어도 새어나온다.
벽과 천장은 티가 섞인 한지로 바르고 바닥은 장판으로 발랐다. 장판 아홉 장 깔이 방이니 한 편 반쯤 될까. 빈 방에 방석 한 장 깔고 앉아 있으니 새로 중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 거치적거리는 것 없어 홀가분해서 좋다.
장판방이지만 시멘트를 쓰지 않고 흙으로만 발랐기 때문에 바닥이 매끄럽지 않고 우툴두툴하다. 그런데 이 우툴두툴한 질감이 나는 너무 좋다. 요즘은 어떤 방이든지 한결같이 매끄럽고 평탄하기만 한데, 오랜만에 이런 질박하고 수수한 방바닥을 대하니 마음이 참으로 느긋해진다.
요즘처럼 닳아져 가는 세상에서는 질박함이나 수수함이란 말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의 우리들 삶이 질박과 수수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하루 세 끼 먹는 음식만 하더라도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기름지고 걸쭉하고 느끼한 것만을 좋아하는 세태이므로,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을 대하기가 어렵다. 이런 음식문화 속에서 살아가노라면 학처럼 곱게 늙기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몸에 걸치는 옷도 질박하고 수수한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요란한 색상과 과장된 디자인,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몸짓도 살갗도 그 위에 바르는 화장도 그런 의상에 걸맞게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주거형태는 어떤가. 거의 규격화된 주거공간으로 인해 그 형태나 마찬가지로 삶의 내용도 두 부모처럼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질박하고 수수한 것을 낡아빠진 옛것으로 물리친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미덕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끈하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화끈함이, 물건이건 인간관계이건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우툴두툴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미친 바람소리도 한결 부드럽게 들린다. 이 방에 나는 방석 한 장과 등잔 하나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서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보고 싶다.
출처 : 법정스님 오두막 편지 中에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