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픽션일까? 논픽션일까? 나는 집이 가난하여 12살때부터 부잣집 막내머슴으로 들어갔다.....부잣집에서 초등학교는 보내주었다. 학교 갔다오면 주로 심부름하고, 군불때고, 겨울에는 거의 10리길을 나무하러 다녔다.
초등하교 졸업할 무렵에는 할머니가 염소를키워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해 주어서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7살에 모교에 급사로 취직을 했다... 면사무소, 농협. 우체국. 식당 심부름, 청소 , 시험지등사, 종치기, 등 모든일을 4년동안 하다가 그만두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새벽에 영등포역에 내리니, 어떤 아저씨가 고향이 어디냐고 묻길래 . 어디라고 하니까 우리 옆동네를 들먹이면서 고향사람 만나서 반갑다면서, 자기는 전자회사 부장이라면서 아가씨도 수백명 있고 특별히 취직 시켜주겠다고 하여 . 골목길을 걸어 가는데 , 젊은 사람들이 골목에서 나오면서 부장님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 간다.
계속 걸으면서 자기회사 취직 할려면 복장이 통일 되어야 하는데, 옷은 본인이 사야 한다면서, 돈가진것이 얼마 있냐고 묻길래 350원 있다고 하니까 , 그돈 자기를 주면 옷을 사가지고 갈테니까 , 버스종점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맨앞에 정차해 있는 버스를 타라고 하여 타는데 , 기사가 고장나서 못가니까 다음차 타라고 하여 내리는데 그아저씨가 바로 뒤에 차 타라고 하여 2정거장 갔는데, 아차 싶어 생각해 보니 처음 탈려고 했던차와 지금 타고있는 차의 번호가 다르다는것을 알고 그때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하 생략-------- 처음에 취직 할려고 했던곳은 계수원 모집 광고 보고 서울에 왔기 때문에 찾아 갔다. 처음에 탄곳은 동대문구 이문동 입구에서 용산 쪽으로 가는 38번 진아교통 이었다... 그당시 입석버스는 지금처럼 버스가 길지 않았는데도 한강중학교로 기억한다, 학생이 가방들고 180명이 버스에서 내린다. 그야말로 학생들을 쑤셔 박아서 태운 것이다... 계수원이란 안내원들 삥땅 못하게 정거장마다 마다 사람이 내린 숫자를 적는 직업이다...
계수원은 아침 5시 승차하면 밤12시30분 까지 하루에 19시간 정도 차를 타야 한다, 처음에는 식사때 식당 의자에 앉아도 속이 울렁거리고, 비행기타고 가는 느낌이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종점이 서울대 입구인 상마교통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계산한 인원수와 안내양 금액이 맞지 않아서 , 서울대는 신축 공사중이고, 그아래 개울에서 안내양이 기사 들밀어 주는것 잡을려고, 버스밑에 들어가서 숨어서 지켜보다가 새벽1시에 정비공 한테 들켜서 그날로 돈도 못받고 해고 되었다.
식당에서 밥을 너무나 조금 주어서 3개월에 15키로가 빠져서, 우선 배불리 먹을수 있는곳에 취직을 하고 싶어 인천으로 가는 삼화고속 버스안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장의 부모님을 만나서 바로 취직이 되어서 15일만에 10키로가 회복 되었다.
동인천 철길아래 홍성각, 배다리쪽 유성각을 두루 거치고, 추석2일전에 고향으로 내려가는데 용산역에서 광장을 지나 기차타는 통로에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5명이나 압사 당했다. 아무리 힘센 장사도 넘어지면 못일어 난다는것을 나는 그때 체험 했다.
추석 지나고 남들이 버린 헌 짐자전거를 고쳐서 타고 , 통영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진동쪽에는 계속 되는 내리막길에는 마찰열로 인하여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
중간 중간 소나무에서 송진을 따다가 가루를 내어서 브레이크 라이닝에 넣어 주어야 된다.
부산 범냇골에 도착하여 범냇골 다리밑에 판자집을 짓고 . 비가 많이 오면 성지곡 수원지에서 모래도 떠내려오고, 장어도 개울에 떠내려온다... 시꺼먼 모래를 건져서 햇볕에 바래면 노랗게 되고, 그모래를 벽돌 만드는 공장에서 사간다...
말하고자 했던 주식에 관한 내용은 다음2부 편에 할께요...너무 늦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