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제 개인사 입니다
처음 이야기 하는 건데요
엄마쪽 외가 막내 삼춘이었던 천태 삼춘
1960년생 외삼춘이 있었어요
옛날 이리 (현 익산시) 에서 깡패 였다던데
외햘아버지가 동네 서당 선생님이 셨고
장남도 교직에 계셨고.. 나름 배운 집안이였던데
막내 아들이었던 그는 이리 깡패 였었나봐요
얼굴이 사각지고 눈썹 짙은 80년대 전라도 깡패 . . .
8남매 가족에게 마져도 인정 받지 못하고
거친 생활을 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당했었나봐요
제가 군입대하던 1999년
외갓집에 군대간다고 인사하러 들럿더니
시골집 한켠 쪽방에서 돈도 없고 술에 쩔어 살 던
막내 외삼춘이 제게 만원짜리 다섯장을 쥐어 줍디다 ..
(당시 최저시급 1시간 이천원)
자신은 조직에게 당해서 불구가 되고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한 거 같던 그 양반이 . .
당시 제가 보기에도 몰락한 기운서린 천태삼춘이
어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지페를 쥐어 주던데
스물한살 이던 저도 의외 여서
엄마 얼굴을 쳐다봤어요( 엄마 나 이 돈 받아도 되요?)
그려고 나서 잊혀질 듯 시간이 흐르고
군대에서 상병 달 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외삼춘 돌아 가셨다고 ..
전라도 금강에 유골 뿌렸다데요
외삼춘은 미혼이었고 아무도 슬퍼 하지 않는 듯 했어요
그런데 몇년마다 한번 씩 외삼춘이 생각나면
무언가 애틋하고 격어보지 않은 감정에
눈물이 얼굴을 흠뻑 적셔요
꼬깃했던 오만원 때문일까요?
농사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하던 깡촌 시골에서
학교도 못보내주는 형편의 집안..
두 주먹 믿고 성공한답시고 그 뜨거운 사내는
시내로 진출해서
뭐가 정의이고 법이고 의리이고 채 알기 전에
인생의 구석으로 내몰려버렸고
어느 나룻배에 실려 유골함의 하얀 가루로 뿌려졌는데
저는 그 뜨거운 오만원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요즘 같을 때 태어났으면 축구 국가대표 황희찬 처럼 포효 하고 다녔을 그 젊은 삼춘을 생각하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천태 삼춘 활약하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저 혼자만 슬픕니다
삼춘 , 사는 건 다 그래요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다 그리움 입니다
삼춘, 그곳에서 편히 쉬시구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