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남편의 정년에 즈음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을 올렸는데 은오회원님들의 따뜻한 댓글들 참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출근을 하고 온 남편은 뭔가 많이 허전해보였고 그 기분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아이들이랑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결혼생활 33년간 한번도 보지 못한 남편의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또 우리 부부 인생이야기의 한 단락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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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황금 연휴 뒤 유난히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 선 순간 집을 잘못 찾았나 하는 착각에 사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거실 한 가운데는 베란다 창고 어디쯤에 박혀 있었을 신혼때 쓰던 밥상이 펼처져 있고 그 위에 라면냄비와 빈 맥주캔 밥상 옆엔 빨간 LG김치냉장고용 김치통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싱크대에는 계란껍질과 고추가루통. 썰다 만 대파. 커피믹스 봉다리와 컵 4~5개등등.....
거실TV에서는 자연인 윤택씨가 혼자 열심히 산을 타며 떠들고 있고 안방TV에서는 당구프로가 방송되고 있는데 정작 남편은 리모콘을 한손에 꼭 움켜 쥔 채 거실 소파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네요.
엊그제 느꼈던 그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듬직한 가장은 어디 가고, 웬 덩치 큰 '자연인' 한 사람이 떡~하니 우리 집에 ......
냅다 등짝스매싱을 날리며 "먹었으면 치우기라도 해야지!" 하고 사자후를 토해내려다, 저 무해하고 태평하게 자고 있는 얼굴을 보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픽 나오더라구요. 그래요, 얼마나 이런 자유롭고 흐트러진 생활이 고팠을까요?
하아... 그런데요. 은오님들, 저혈압 치료에는 직빵일 것 같은 남편과의 인생 제2막, 과연 저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완전한 삼식이로 진화하기 전에 얼른 가사노동 분담표부터 엑셀로 짜야겠습니다. 앞서 겪으신 선배님들의 생존 노하우, 격하게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