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글 모음(14)
자기 자신답게 살라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출처 : 법정 스님 글
마음의 주인이 되라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이다.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 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출처 : 법정스님 무소유중에서
처음 그 마음처럼
우리가 무언가에 싫증을 낸다는 것은만족을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가졌던나름대로 소중한 느낌들을쉽게 잊어가기 때문이죠...
내가 왜 이 물건을 사게 됐던가?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나게 됐던가?내가 왜 그런 다짐을 했던가?
하나 둘 곱씹어 생각하다 보면그 처음의 좋은 느낌들을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생각은 변화합니다.늘 같을 순 없죠.
악기와도 같아요.그 변화의 현 위에서 각자의 상념을 연주할지라도현을 이루는 악기자체에 소홀하면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늘 변화를 꿈꾸지만사소한 무관심,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이따금 불협화음을 연주하게 되지요.
현인들은 말합니다.˝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까이 있다˝
그런 것 같아요.행복은결코 누군가에 의해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눈을 새롭게 뜨고 주위를 바라보세요.
늘 사용하는 구형 휴대폰,어느새 손에 익은 볼펜 한 자루,잠들어 있는 가족들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사랑했던 사람, 지금 사랑하는 사람.
먼저소중한 느낌을 가지려 해 보세요.
먼저 그 마음을 되살리고주위를 돌아보세요.
당신은 소중한데그들은 그렇지 않다고속상해 하지 마세요.
우리가 소중하게 떠올렸던 그 마음.그들로 인해 잠시나마 가졌던 그 마음.볼펜을 종이에 긁적이며 고르던 그 마음.처음 휴대폰을 들구 만지작거리던 그 마음.
그 마음을 가졌었던 때를 떠올리며엷은 미소를 짓는 자신을 찾을 줄 아는멋진 우리의 모습을스스로 선물해요.
잊지 못할 추억들을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감사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선물해요.
오늘 옷참 잘 어울려요
먼저 웃으며 인사해요.안녕너 참 예뻐 라고
출처 : 법정 스님 글 중에서
며칠 전 순천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차안에서였다. 내 옆자리에 앉은 고등학교 3학년생이 시집(詩集)을 펼쳐들고 열심히 읽는 걸 보고, 나는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다. 시(詩)를 읽는다는 당연한 이 사실이 새삼스레 기특하고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오늘의 우리들은 너무 메말라버린 것이다.
더구나 입시지옥의 문 앞에 들어선 고3짜리 학생이 시험공부와는 직접 상관이 없는 시(詩)를 읽는 걸 보니, 그가 얼마나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는 청마(靑馬)의 <행복>을 읽고 있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러고 보니 내 자신도 시를 읽은 지가 꽤나 오래 되었다. 그날 그 학생 덕분에 다락에서 시집을 꺼내들고 밤이 깊도록 등불 아래서 두런두런 시를 읽고 있으니, 빡빡하던 감성(感性)에 물기가 도는 것 같았다.
시(詩)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시인의 관조(觀照)가 독자적인 리듬을 통해 우리 마음에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 리듬은 물론 정제된 언어의 구성으로 울려온다. 그리고 그 낱낱의 언어는 시인에 의해 선택되고 창조된 것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국어의 아름다움은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의 연설문에서가 아니라, 시인들에 의해 빛을 발한다. 눈이 있는 자 그림을 고보 귀가 열린 자 음악을 들을 수 있듯이, 말과 글을 알고 감성이 투명한 사람이면 누구나 시의 세계에 닿을 수 있다. 우리들이 신문이나 잡지를 보고 TV를 시청하듯이 시를 읽은 것도 일상생활의 한 부분이다.
시를 읽으면 품성(品性)이 맑게 되고 언어가 세련되며 물정(物情)에 통달되니 수양과 사교 및 정치생활에 도움이 된다.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은 마치 바람벽을 대한 것과 같다. 공자의 말이다.
예전에는 시인(詩人)이라는 전문가가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식인이 곧 시인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정치인들이나 경제인 혹은 학자들이나 지식인들한테서는 옛사람들이 지녔던 그런 멋과 풍류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어떤 목표 달성을 위해 차디찬 숫자(數字)만을 열심히 외우고 있을 뿐이다. 어찌 그들만 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숫자의 노예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들은 지성(知性)과 의지(意志)로는 제법 호기를 부리고 있지만 인간이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감성(感性)은 너무도 팍팍하게 메말라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환경 자체가 비정서적이고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감성이 결핍된 인격은 온전한 인격일 수 없다.
우리 시대에 동양 최대의 운동 경기장이 세워지고, 무슨무슨 회관과 기념관이 건립되고, 우뚝우뚝 고층빌딩이 솟아오르는 것은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좋은 시가, 문학이, 예술이 창조되는 일은 그보다 훨씬 값지고 영원한 기쁨이 될 것이다. 육체의 힘의 국력이라면 정신력은 보다 큰 국력이 될 것이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우리 고유의 말과 글을 쓰고 있으면서 세계의 언어시장에 민족의 서사시(敍事詩) 한 편 내 놓은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우리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가 만든 상품과 노동력은 세계 시장을 넘나들면서도 정신문화의 소산인 언어예술은 이렇다 할 진출이 없다는 말이다.
곰곰 한번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육체의 힘과 기(技)를 겨루는 국제경기에서 그 순위와 메달에 그토록 집착하는 그런 관심과 열의와 재력의 10분의 1 아니 100분의 1만이라도 진정한 문예진흥(文藝振興)을 위해 기울인다면 그 결과는 곧 달라질 것이다. 도난 뿌려준다고 해서 문학과 예술이 진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금(基金)과 함께 표현의 자유와 발표의 기회를 근본적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양식 있는 표현의 자유가 그 어디에도 방해받음 없이 누려질 때 겨레의 지성과 감성, 그리고 슬기는 마음껏 날개를 펴 진정으로 문학과 예술이 진흥되고, 그것이 모든 시민의 것으로 생활화되어 마침내는 민족의 자질까지 드높이게 될 것이다.
우리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그 잠재력을 시로써 드러내고 또한 그걸 읽음으로써 삭막한 세태에서 오염된 우리들의 혼을 맑힐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과 경제인들의 입에서 시가 외워지고 공무원이나 사무원들의 메모지에 몇 줄의 시가 적히며 밭가는 농부와 공장 근로자의 호주머니에도 시집이 들어 있고 주부들의 장바구니에도 싱그러운 봄나물과 함께 산뜻한 시집이 들어 있다면, 그래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라도 그걸 펼쳐들고 낮은 목소리로 읽는다면 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물기가 돌고 아름답고 정다워질 것이다. 이 팍팍하고 막막한 세상에서 무엇에 쫓기지만 말고 영혼의 음악인 시도 좀 읽으면서 운치 있게 살아갈 일이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밑을 뚫어도 물위에 흔적조차 없다 야보 선사의 금강경 송(金剛經頌)에서 옮긴 한 구절. (1983. 3. 10)
글출처 : 산방한담 中에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