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매우 힘든 삶의 과정입니다. 혹자는 옛날에는 괜찮지 않았나? 하는데 옛날에도 외벌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부모한테 전세금도 지원 받지 못하고 소위 삭월세로 시작되는 신혼생활은 남의 집 2층이나 빌라에서 힘겹게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다시 그 세월로 돌아 가기 싫은 날들이였습니다. 서초동 빌라 대치동 방배동 2층집 전세로 전전 했습니다. 80년대 아파트는 매우 귀했고 당시는 전월세 기간도 1년이라 수시로 짐 싸서 이사다녀야 하고 고달픈 월급쟁이 신세를 때론 한탄도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회사는 빅3회사라 회사에서 처우는 괜찮았지만 외벌이라 급여기 나오면 10일 이내에 다 소진되었습니다. 당시는 은행이자도 높고 대출문턱도 높아 대출 받는 건 하늘의 별따기 보다 힘든 시절이였습니다.
내집마련을 위해 정말 남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마이카 붐이 불던 시절이라 맞벌이 부부는 마이카를 타고 다녔지만 차장 시절에도 버스등 대중 교통으로 출퇴근하였고 부장 진급하면서 회사 업무용차량으로 첫차를 대면하였습니다. 즉 내돈으로는 차 구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맞벌이 부부들은 골프장이다 나들이다 해서 즐겁게 지냈지만 외벌이는 부동산 임장이 일상이였습니다. 지금도 자녀들한테 정말 미안한 것이 자주 이사 다니다 보니 초등학교를 3곳이상 전학 할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경험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습니다. 그때 다짐한게 자녀들한테는 절대로 이런 어려움은 물려 주지 않겠다는 각오였습니다. 당시는 대출도 쉽지 않았지만 이자도 매우 높아서 외벌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절이였습니다. 회사 동료중에 맞벌이 하는 친구들은 생활도 여유롭고 내집마련도 쉽게 마련하는 걸 보고 외벌이의 한계를 실감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던 시절이였습니다. 당시는 회사에서 직원들 복지차원에서 사원 주택을 서울 주변에 많이 분양 했습니다. 자금이 넉넉한 맞벌이 부부들은 좋은 지역에 분양을 받았지만 돈 없는 외벌이는 서울 끝 변두리 요즘 소위 노도강이라는 곳에 어렵싸리 당시 기준 4천만원(대출 1200만원 포함)에 분양 받았습니다. 당시는 3저 호황으로 주식 부동산이 급등하던 시절이였습니다. 4천만원에 분양 받았던 서울 변두리 아파트가 1억2천까지 급등했습니다. 신축인 변두리 아파트를 매도하고 잠실 주공1채와 분당 아파트 1채를 매수했습니다.소위 지금 시절에 말하는 갈아타기를 그 당시에 과감하게 실행했던 것 입니다. 당시는 이게 가능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게 가능했던게 많은 지역 임장 덕분이였습니다. 남들은 여유롭게 즐길때 외벌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습니다.물론 운도 많이 따라 주었습니다. 지금은 상급지에 둥지를 틀고 자녀들한테 다짐한데로 서울에 괜찮은 지역에 집도 한칸씩 마련해 주고 부모로써 어느정도 역할은 하지 않았나? 스스로 자위하고 있습니다. 주변 동료들 동창들 중 자녀들한테 집 한칸이라도 마련 해 준 건 외벌이가 유일 했습니다. 외벌이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한가지 진실은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하면 결국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외벌이로 살아 가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 외벌이로 힘들게 살아 가는 분들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요즘 이래 저래 부동산 문제로 시끄러운 시국입니다. 항상 난국에 길이 있습니다. |